前史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하여 20년 만에 새롭게 재탄생한 책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제시의 일기』(김현주 편, 양우조·최선화 공저, 우리나비, 2019.2, 289쪽)로, 부제는 ‘어느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일기’라고 적시하였다.
앞서 이 책은 외손녀 김현주가 1999년에 같은 제목으로 출간하였으나, 출판사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절판되었다. 이 육아일기는 2006년 3월 1일에 KBS 삼일절 특집 다큐멘터리 ‘광야에서 들꽃을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제작, 방영된 적이 있었다. 2016년에는 원저가 절판된 상황에서 만화가 박건웅을 통해 『제시 이야기』라는 그래픽 노블로 출간된 적도 있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프롤로그와 추천의 글에 이어 ‘1. 중국, 그 대륙을 떠도는 부평초가 되어, 2. 그래도 희망을 가슴에 품고, 3. 제2의 고향, 중경, 4. 그대를 그리며, 5. 계속되는 시련과 아픔, 6. 소원은 이뤄졌지만’ 등의 본문에 이어 ‘못 다한 이야기, 오늘에 하는 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를 그리며, 에필로그 역사는 이어진다, 일기에 등장한 사람들에 대하여’ 등의 보론 등으로 구성되었다.
주요 내용과 현재적 의의
이 책에 담긴 기록을 작성한 사람은 양우조, 최선화 부부이다. 양우조(1897∼1964)는 평남 강서 출신으로 일제 식민통치 이후 중국 상하이 망명, 미국 유학에 이어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 등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공훈을 인정받아,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최선화(∼2003)는 이화여전에서 재직하다가 동지이자 연인을 찾아 1936년 단신으로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와 한국애국부인회의의 서무부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역시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아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육아일기의 주인공인 제시도 2010년 세상을 떠났다.
꾸준히 기록한 일기, 그것을 모아 종합한 한 권의 책에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100년 전 만난 어느 남녀는 사랑의 씨앗을 잉태하고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독립운동의 험난하고 기나긴 길을 꾸준히 걸어갔다.
이 책은 해외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증언하는 자료집이자 간난의 시절에 얻은 딸의 성장기를 담은 육아일기이다. 전자가 역사적, 사료적 가치를 담고 있다면 후자는 희로애락의 인간적 삶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이 상징하듯이 딸 제시의 성장사를 담고 있다. 일기 속에는 독립운동가들의 구체적인 삶과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배어 있다. 일기는 정확히 1938년 7월 4일부터 1946년 5월 4일까지의 기록이다. 이 기간에 꾸준히 작성되었으며, 많은 기록이 소실된 임시정부의 어제와 오늘을 생생히 복원하고 있다. 일기에 담긴 높은 사료적 가치는 중일전쟁 당시 임시 정부가 일본의 공습을 피해 장사(長沙)·광주(廣州)·불산(佛山)·유주(柳州)·기강을 거쳐 중경(重慶)으로 이동한 과정과 실상을 시기별로 정확히 알려주기 때문이다.
책의 주요 내용은 딸의 재롱과 조그만 생채기에도 마음을 졸이는 부부의 애환과 나라를 빼앗긴 민족으로 전쟁의 포화 속에 타국을 떠돌며 생사를 오가는 심경을 담고 있다. 삶과 죽음의 공존, 타국에서 자라는 딸 제시를 바라보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 독립운동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의연함, 한국 동포들 사이의 정, 한국과 중국 정치인들의 우정, 중국인들의 도움과 배려 등 역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양우조는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태어난 아기. 그 아이가 자랐을 때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안의 돌림자를 사용해 딸 이름을 ‘제시’라고 짓는다.”라고 말하며 한국판 ‘안네의 일기’를 작성하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해 가는 일상의 행복 속에서 조국으로 귀환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부부가 겪은 중국에서의 삶은 일본군의 공습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제시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이 일기는 1946년 5월 4일 배를 타고 고국의 땅 부산에 도착하면서 끝을 맺는다. 일기를 정리한 부부의 외손녀인 김현주는 “이 일기를 통해 ‘강한 의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느끼기를 바랄 뿐입니다.” 라고 덧붙이고 있다. 여기에 당대의 대표적인 명망가인 백범 김구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 같은 분들의 소소한 일화들도 소개되고 있어 그 재미를 더한다. 특히 김구는 이들 부부의 뜨거운 사랑과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높이 사 부부의 결혼 당시 주례를 설 정도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은 육아와 관련된 개인의 일기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궤적을 담고 있는 역사적 기록에 해당한다. 그만큼 소소하고, 재미있고, 무겁고, 역동적이다.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생생하고 구체적인 역사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