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를 넘나들면서 항일전선을 이끌었던 176명의 구체적인 행적과 참고자료를 게재하고 있으며, 517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2018년 10월에 발간되었다. 경기문화재단·경기문화재연구원·경기학연구센터에서 기획였다. 책 구성으로 경기도 행정단위로 구분하였는데, 현대 이후 경기도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당시를 기준으로 하였다. 100년 전과 현재의 행정구역은 달랐기 때문에 현재 북한 행정구역에 해당하는 개성·개풍, 현재 서울의 일부에 해당하는 경성, 그리고 한국전쟁 휴전 이후 미수복지구로 남아있는 장단도 포함되었다.
연미당
수록 인물로 1부 가평에 신마실라(申麻實羅)·신숙(申肅)·신화균(申化均)·장기영(張基榮) 4명, 2부 고양에 고윤원(高允源)·김권(金權) 등 10명, 3부 광주에 김교헌(金敎獻)·김창환(金昌煥) 등 11명, 4부 김포에 김도연(金度演)·김성한(金聖漢) 등 5명, 5부 남양주에 김순권(金順權)·안재덕(安載德) 2명, 6부 수원에 구철회(具喆會)·김원섭(金元燮) 등 8명, 7부 시흥에 박시창(朴始昌) 1명, 8부 안성에 심광식(沈光植)·이규철(李圭哲) 등 15명, 10부 양평에 남상철(南相喆)·변준호(卞俊鎬) 등 9명, 11부 여주에 권오돈(權五惇)·신달선(申達善) 등 6명, 12부 연천에 조소앙(趙素昻)·조순옥(趙順玉) 등 7명, 13부 용인에 공인덕(孔仁德)·김달환(金達桓) 등 14명, 14부 이천에 김기주(金基周)·유성근(柳聖根) 등 7명, 15부 진위에 김상완(金商完)·박재훈(朴在勳)·원심창(元心昌) 3명, 16부 파주에 박영준(朴英俊)·박찬익(朴贊翊) 등 8명, 17부 평택에 김만진(金晩鎭)·김영오(金永五) 등 6명, 18부 포천에 강지형(姜芝馨)·김영관(金榮觀) 등 5명, 19부 인천에 김동수(金東洙)·송창석(宋昌錫) 등 5명, 20부 강화에 김세원(金世元)·김윤원(金允元) 등 5명, 21부 개성에 김기창(金基昶)·김동순(金東純) 등 24명, 22부 개풍에 김진동(金鎭東)·이종근(李琮根)·이희화(李熙和) 3명, 23부 경성에 최주영(崔柱英)·호근덕(扈根德) 2명, 24부 장단에 김영선(金榮璿)·백종렬(白鍾烈) 등 7명, 25부 기타(미상)에 구순암(具順岩)·남상복(南相福) 등 5명을 수록하였다.
평가와 의미 이 자료집에 수록된 인물이 근현대 격동기(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8·15해방 이후 분단 정국)에 독립을 향한 몸짓의 모든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이 자료집 발간 이전에도 경기도의 도사편찬위원회에서는 『경기인물지』(상하, 1991),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1996), 『내고장 경기도의 인물』(①②③, 2006) 등의 발간물을 통해 근현대 시기 독립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주요 인물의 행적 등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즈음하여 지역별로 국내외 독립운동가를 모두 포함하여 소개한 본 자료집의 발간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한 때를 오늘 기념하는 것이 때가 되면 반복되는 관행으로 고착되면 숨어 있는 행간의 의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독립운동에 관여하면 3대가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경구가 우리 내부의 자조와 회한으로 깊이 새겨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더욱 적극 발굴, 부각할 필요가 절실하다. 부모의 생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듯이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중요한 독립운동사에 주목하여 새롭게 알리고, 기념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관련 유적지를 보존하고, 무명의 독립운동가를 새롭게 발굴·현양하고, 알려진 인물의 행적은 보완하여 자료집을 내는 것은 모든 작업의 기초에 해당한다. 개인 집안을 넘어 국가 정체성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건조물·터(지)·기념물 유산 271건의 시·군별 분포 현황은 화성시가 33건으로 가장 많았고, 용인시가 23건, 안성시가 21건, 이천시가 15건, 광주시가 14건으로 뒤를 이었다. 동산자원 76건은 경기도박물관, 독립기념관, 최용신기념관, 수원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등에서 소장, 전시자료로 활용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도 다수 발굴되었다.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대한독립단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박장호의 묘소, 1919년 3·1운동 당시 오산 주민 800여 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전개한 오산시장 만세지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이수흥 의사가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 일제에 체포된 피체지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조소앙 선생의 생가터와 기념공원 등 기존 유적들에 새로운 정보도 다수 추가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건조물뿐만 아니라 항일관련 스토리를 담고 있는 유적, 유품과 일기, 재판 기록 등 다양한 동산 유산도 포함됐다. 또 전수조사를 목표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하면서도 개별 현장에 대한 구체적이면서 정확한 실태조사에 힘썼다.
조사를 담당했던 경기도 관련 공무원은 “이번 조사는 그 동안 학계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던 타성을 벗어나 자체적인 실태조사를 했다는 점, 그 결과를 보존·관리·활용 방안과 연계했다는 점, 역사적 의미가 깊은 문화유산의 지역 자원화를 유도했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크다”고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
항일 운동 유적지 안내판과 표지판 설치 경기도는 도내 항일유적에 대한 실태조사를 완료하고 안내판과 동판 등 안내 표지 설치 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안내판과 표지판 설치 작업은 항일유적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된 항일유적지가 훼손될 우려가 컸기 때문에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설치 작업의 근거는 “도지사는 역사적으로 고증을 거친 항일유적에 대하여 표지석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2016년 5월에 제정된 「경기도 항일운동유적 발굴 및 보존에 관한 조례 제9조(유적 보호 및 관리)」에 있었다. 도내 항일운동의 현장을 알리고자 2018년도부터 항일운동 유적 안내판 및 표지판 설치 사업을 진행하였다. 첫 해인 2018년도에는 29개 시군에 안내판 62개와 표지판 20개를 설치했고, 2019년에는 1억 2,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안내판 59개와 표지판 25개를 설치하였다. 그 결과 2020년 2월 현재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도내 항일운동 유적지 121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45곳에 표지판을 설치하는 사업을 완료하였다.
3·1운동 당시 화성 지역에서는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불태우고 순사 2명을 처단하는 등 치열한 시위양상이 전개되었다. 1919년 4월 15일 일본 아리타 중위는 보병 11명을 이끌고 제암리로 들어와 마을의 성인 남자들을 교회로 모은 뒤, 건물 안을 난사하고 불을 질러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근 고주리로 건너가 독립운동가 김흥렬 일가를 참상하고 방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제암·고주리 사건은 일제가 경기도 화성지역 독립운동의 근거지에 대한 전복과 더 이상의 3·1운동 확산을 저지할 목적으로 자행한 참극이자 보복 사건이었다. 순국기념관은 개관 이후 관련 유물과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전시하여 일제의 만행과 학살사건 전모, 화성지역 독립운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 다른 테마관광코스로 일제강점기 당시 경서 지방의 대표적인 장터였던 김포시 양촌면 오라니장과 월곶면 군하리장의 3·1운동을 기념하는 ‘김포 독립운동기념관’을 꼽을 수 있다. 이곳은 1919년 오라니장터 등 김포지역에서 일어났던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 2로에 위치한 김포 독립운동기념관은 총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념관에는 당시 사용했던 태극기는 물론 만세운동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3·1절 10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기획전 ‘전국에 울려 퍼진 함성’을 개최하여 3·1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시위자 체포 장면과 운동 후 일제에 의해 파괴된 민가 등 일제의 만행 등을 담았다. 경기도가 방점을 둔 또 하나의 장소는 수원 연무대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에서는 횃불을 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팔달산 서장대 등 20여 곳의 성곽에서 일제히 봉화가 타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남문 밖 객주에서 머물고 있던 상인들도 횃불을 보고 달려와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1919년 3월의 수원 만세운동은 북문 안 화홍문을 비롯하여 3월 16일 장날에는 팔달산 서장대와 동문 안 연무대에 각각 수백 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수원군(현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은 전국 4대 3·1운동 항쟁지로 불리지만, 관련 인물의 생가와 유적지는 도시개발의 여파로 거의 모두 사라졌다. 경기도에서 손꼽히는 3·1운동 항쟁지였다는 역사성이 확인되지만, 급격한 도시화의 뒤안길로 그동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새삼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테마관광코스 개발의 의미 경기도의 3·1운동은 서울에서 비롯된 운동에 이어 초기부터 참여 인원, 운동의 지속성, 피해 규모 등을 감안하여 그 영향력이 막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항일운동 관련 테마관광 상품을 통해 100년 전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 일어난 3·1운동이 보편(세계사적 의미, 민족지도자)과 중앙(경성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비롯되어 특수(일제의 식민통치와 사회경제적 원인, 청년과 농민의 주도)와 지방(모든 군의 면·리, 5일장)으로 확산된 양상, 그리고 그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조명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 특징, 시위 규모, 일제의 폭압 정도 등을 감안,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할 3가지 테마관광코스를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경기관광공사가 출시한 도내 항일 유적지를 탐방하는 ’투어 상품‘은 ’일제의 만행‘과 ’광복 염원‘을 주제로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제암리 만세길 트레킹~안성시 3·1운동 기념관~광복사~(구)오산공립보통학교(성호초)를 둘러보는 코스이다. 코스 투어 외에도 기념·기억, 성찰·발전, 포용·미래 등 3개 분야별 강의와 일제의 만행을 담은 특별 사진전이 마련되었다. 항일운동과 관련된 테마관광코스는 반복적인 기념식에 머물지 않고 1년 아닌 더 오랫동안 도민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보고 느끼는 기념사업을 통해 도민들의 역사의식과 자부심을 높이려는 것으로, 한마디로 재미·의미·자극을 동시에 부여하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학생들의 항일유적 답사는 청소년들에게 항일투쟁의 의미와 독립운동의 거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경기도교육청과 협력해 경기도만의 특색 있는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3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큰 세상을 보면 시야가 넓어지기 마련이죠. 단순 관광이 아니라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 깨닫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경기도 중학생 항일유적 답사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본격적인 해외 탐방에 앞서 경기도교육청은 2019년 초부터 이번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학생 주도의 다양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특별추진위원회 및 지원단을 구성하고, 분과·주제별세부계획을 수립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3·1독립선언서 필사, 관련 도서 읽기, 탐방지 역사 교육, 체험 현장 토론 등 다양한 사전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준비했다”고 하면서 “학생들이 이번 여정을 통해 선조들의 삶과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 시대로 나아가는 지혜를 얻길 바란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일련의 준비과정을 거쳐 경기도는 8월 13일에 도내 중학생 1,000명이 ‘응답하라 1919,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중학생 역사원정대’ 발대식을 경기도청 북부청사 평화누리홀에서 거행하였다. 원정대 대표 학생 3인이 역사원정대 선서문을 낭독하였고, 경기도지사는 학생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조끼를 입혀주며 답사활동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역사원정대에는 시군별 1개 팀씩 중학교 2학년생 31개 팀과 함께 미인가 대안교육기관이나 청소년 쉼터에서 생활하는 학교 밖 청소년 2개 팀도 참가하였다. 각 팀은 학생 26명, 역사·보건교사 2명, 도청·소방 공무원 2명 등 30명씩으로 구성되었다.
1진으로 출발한 원정대는 8월 19일 상해임시정부청사 기념관을 둘러보고, 외벽 하단에 놓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푯말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거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으로 잘 알려진 홍구(홍커우)공원 내 윤봉길 기념관을 찾아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희생에 헌화하고 넋을 기렸다. 20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거주지와 김구 선생 피난처로 사용된 매만가와 재청별장을 찾았다. 학생들은 김구 선생이 사용한 침대와 옷장, 비상탈출구 등 가옥 곳곳을 둘러봤다. 21일에는 항주 임시정부청사를 직접 찾아 둘러보고, 22일 귀국길에 올랐다. 원정대 전체는 8월부터 11월까지 33개 팀으로 나눠 3박 4일 일정으로 3개월 간 릴레이 항일유적 답사를 순차적으로 떠났다. 중국 상하이와 항저우를 시작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등 독립운동 및 항일 역사유적지를 탐방하며 역사현장을 직접 보고 느꼈다.
원정대에 참여한 학생들은 “항일독립운동이 펼쳐졌던 현장에 직접 와보니 독립운동 현장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생생하게 느꼈고, 선조들의 희생정신을 가슴 깊이 기억하게 될 것 같다”고 언급하거나 “김구 선생님 피난처에 와서 생활했던 흔적을 보니, 집에서 책으로 읽을 때보다 실감이 나고 독립운동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새삼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러한 해외 항일유적 답사는 참여한 학생들 모두가 3·1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평화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역할과 현실인식을 자각하는 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