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민족이 나서 전국 곳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친지 100년이 지난 2019년, 그 날의 열기와 의미를 재연하는 다양한 여러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 가운데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민간 공모지원 사업으로, 연극과 음악을 콜라보한 창작공연인 ‘마지막 봄, 그 날을 기억하며’가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1919년 3·1운동 과정에서 수암면 비석거리 만세시위를 바탕으로 하여 기획된 것이다.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콜라보 공연이 2019년 4월 20일(토) 15:00시에 안산시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과 27일(토) 15:00시에 예술광장로 월피공원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100년 전 안산 지역의 대표적인 3·1운동으로 수암면 비석거리 시위를 꼽을 수 있다. 각 마을의 구장(현 이장)은 면사무소와 주재소, 보통학교, 향교 등이 몰려있는 읍내 비석거리에 모이라는 통문을 돌리자, 당일인 3월 30일에 참여한 인원이 모두 2,000명에 달했다. 이 날 시위의 특징은 참가 계층이 지역 유지와 지식인 계층을 포함하여 다양했다는 점, 마을 주민 간에 두터운 연대감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참가 인원이 대규모로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거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 공연은 안산을 대표하는 전문예술단체인 ‘극단 이유’와 예비사회적기업인 아트벨라르떼가 주관하여 콜라보한 것이다. 홍보 포스터에 ‘100년 전 함성, 안산에도’라는 표현을 적시하였다. 이 공연에는 독립을 위해 안산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사람 중에 유익수를 비롯하여 홍순칠, 김봉문, 김병권, 윤병소 등이 등장하는 연극과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 음악 공연이 펼쳐져 많은 시민들의 가슴 속에 애국심을 꿈틀거리게 했다.3·1절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펼쳐진 이 공연은 크게 3가지 테마로 진행되었다. 먼저 3·1운동 관련 사진전이다. 100주년에 걸맞는 인상적인 사진들을 로비에 전시해서 관람한 시민들이 그 날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고 애국심을 고양시켰다. 두 번째는 3·1운동과 안산 독립운동가 13인의 활동내역에 대한 안산문화원 향토사 전문위원의 강연이 있었다. 세 번째는 공연과 시민 참여형 플레시몹인 태극기퍼즐 퍼포먼스가 있었다.
공연을 준비한 극단 이유 대표와 아트벨라르떼 대표는 “안산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분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경기문화재단 공모사업으로 안산의 독립운동을 재현할 수 있는 창작공연을 올려 매우 기쁘다. 선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만들어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하였다”고 밝혔다.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국가와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시위에 나섰던 선열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방법과 표현의 문제일 뿐 언제나 진행형이어야 할 것이다.
이 기록전은 대한민국임시정부, 3·1운동 몰입형 사진융합 콘텐츠 전시회 일환으로, 2019년 5월 27일에서 31일까지 수원시 행궁로 22번길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행궁재 갤러리에서 열렸다. 전시회는 ‘26세 청년 장준하가 대한민국 광복군이 되기 위해 스카다부대를 탈출하여 충칭 임시정부에 이르렀던 6000리 대장정길’을 표현한 것이다. 이 대장정길은 그간 현대사 관련 기록과 발간물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주요 내용으로 장준하와 김준엽 일행은 1944년 11월 21일 처음 목적지였던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을 향해 길을 떠난 것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대장정에는 청년들만이 아니라 여성과 아이까지 포함된 복잡한 구성으로 이들의 발길은 더디었고 그만큼 위험 부담도 컸다. 그들이 린취안에서 충칭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갖은 고생을 다하며 나아간 길이었다. 그들이 걸은 길은 험산준로 그 자체였고, 중간에 장준하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는 일도 발생했다. 얇은 청색 여름 군복에 맨발에 풀로 만든 신발을 신고 험한 길을 걷는 과정에서 굶거나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은 다반사였다.
고난과 위험이 곳곳에 도사린 대장정의 역사적 의미를 사진과 VR콘텐츠를 접목시켜 전시회를 구성하여 디지털융복합시대의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선보였다. 전시회의 다양한 자료와 사진 등을 통해 현실 속 공간에 재현한 것이다. 전시회가 끝난 5월 31일 사진비평가 이광수의 진행으로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책의 구성은 들어가는 시로 ‘만고풍상(萬古風霜)’에서 나오는 시 ‘조국의 가을’을 비롯하여 본문에 26개의 소목차를 설정하여 근현대 격동의 세월 속에 뼈저린 가족사와 개인의 체험을 그리고 있다. 주요 목차를 살펴보면 가라후토에서 태어난 일본 국적의 조선아이, 부모의 혼례와 강제징용,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선 사람들, 해방 이후 사할린에 버려진 조선 사람들, 러시아 중학교 10년제를 졸업하다, 대학에 가고 싶다 - 평양? 모스크바?, 나는 유즈노사할린스크 국립 사범대학교 학생, 나는 누구입니까?, 내 삶의 제1전환기:교직-기술직-교직, 조선과의 첫 상봉: 희망 반, 실망 반, 내 삶의 제2전환기:한국어 교수, 사할린 한인의 민족 정체성 등 목차만으로도 그가 겪은 파란만장한 삶의 과정을 느낄 수 있다.박승의는 러시아 사할린 남부 가라후토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아버지와 뒤따라 이주해온 어머니 사이에서 1942년 일본 국적을 가진 조선아이로 태어났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사할린에도 해방이 찾아왔으나 조선인은 무국적자로 억류되어 고향 땅에 못가고 50여 년 동안 사할린에 묶여 있었다.
이 책은 박승의 교수의 역사 에세이로 일제강점기 당시 사할린 강제징용 가족의 수난과 극복과정을 그렸다. 박승의 아버지는 1939년에 일본에 의해 강제로 징집되어 사할린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여 사할린은 러시아가 차지하였다. 그리워하던 조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사할린에서 오도 가도 못한 신세로 무국적자로 사는 운명에 처했다. 1세 강제징용자와 가족들은 그리운 고향으로 갈 날만을 기다리다가 많은 사람이 차가운 땅에 묻혔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 무국적자, 북한, 소련, 러시아 등으로 자의가 아닌 타의로 국적이 바뀌는 운명을 겪었다. 1990년대에 러시아와 국교가 맺어져서 사할린 한인 1세의 영주귀국이 이루어졌다. 해방 이전에 사할린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강제징용자 1세대에 포함하여 영주귀국이 가능해졌다. 박승의도 2010년 영주 귀국하여 경기도 파주시에 정착, 마침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삶을 살다보니 책 제목에서 암시하는 ‘나는 누구냐?’란 질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타국에 오래 살면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기 위한 부모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바로 ‘한국 사람의 특성’이자 정체성으로 내면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난의 시간을 보낸 박승의는 사할린대학교 경제 및 동양학대학 교수, 사할린 주 한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사할린 한인의 위하여 한국어 교육에 매진하였고, 현재 사할린 주 한인역사 연구원, 파주시 사할린 영주귀국자 협회 회장, 디아스포라 문화원 원장직을 맡고 있다. 현재 저작활동을 통해 사할린 강제징용의 역사와 강제징용 가족의 아픔과 회한을 널리 알리고 있다.